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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빠르게 과열 됐던 스타트업 버블이 꺼져갔던 해이고,

그 큰 흐름에 저항해보기 위해 직무까지 변경하며 최선을 다해 마지막 발버둥 쳤지만 결국 패배했던 해였다.

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처음부터 다시 내게 가치있고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사업 대신 결혼을, PO 대신 개발자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연말이 되어 다시 돌아보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고 이직한 회사도 굉장히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볼 때 위의 두 결정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좀 더 상세하게 적어보면 아래처럼 나눠볼 수 있겠다.

전직

개발자 → PO

연초에는 스타트업의 겨울이 점점 매서워지고 여기저기서 구조 조정, 폐업 등의 뉴스가 쏟아졌다. 10명에서 60명이 넘는 규모로 꾸준히 성장했던, 나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젊음을 갈아 넣었던, 잠시 fire족을 꿈꾸게 해줬던… 내가 다녔던 회사도 재정 위기를 겪었다.

회사를 살려내기 위해 나는 Product Owner로 직무를 변경하고 빠르게 매출을 내기 위한 일종의 신사업 조직을 맡게 되었지만 재정 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와 결국 구조 조정이 진행 됐다. 함께 동고동락 했던 수 많은 동료들이 권고 사직 당했고 우리 팀도 당장 매출을 내고 있던 팀으로 흡수되었다.

옮겨 간 팀에서는 여러 신사업들을 맡아 사업 개발, 오프라인 행사 기획, 웹서비스 기획, 개발 등을 진행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났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PO의 일이라기 보다는 점점 사업 개발 및 운영에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고 옮겨 간 팀의 비즈니스 도메인에 대한 낮은 관심도, IT를 크게 활용하지 않게된 회사 분위기 등 일하면 할수록 뭔가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이 일이 내가 즐겁고 잘할 수 있는 일인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이직

PO → 개발자

하반기가 시작될 무렵, 고민 끝에 일단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퇴사 후에는 사업과 이직을, 만약 이직을 한다면 PO와 개발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사업을 선택한다면 최소 몇 년 동안은 불안정하고 사업에만 올인해야할 것이 분명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고, 사업 초기에 결혼을 하는 놀라운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두 개를 동시에 한다면 둘 다 제대로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이후로 계속 사업을 하고 싶었고 이전 회사도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배우기 위해서 들어갔던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사업과 결혼 중 고민한 끝에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평생 사업을 하지 않고 직장인으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에는 더 쉽지 않겠지만 일단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기로 했고, 사업은 그 이후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결정했다.

전 회사에서 개발이 아닌 일들을 경험해보니 나는 확실히 IT를 활용하지 않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사업에도 관심이 많긴 하지만 당장 직장에서 성과를 내기에는 개발 지식을 가지고 매니징을 하는 일에 강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PO나 PM보다는 TPM(Tech Project Manager)과 개발자로 범위를 좁히고 이직할 회사를 찾았다. 그러다가 지금의 회사를 만났고 개발자의 포지션이었지만 직무와 상관없이 모든 크루가 한 명의 Problem solver로서 일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회사였기에 개발 외의 다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고, 개발자를 포함한 크루 한명 한명이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며 고객과 성장을 중시하고, 전문성 또한 뛰어난 분들이어서 합류를 결정했다.

그렇게 다시 개발자가 되었다.

결혼 준비

연말에는 이직을 하고 평일에는 회사에 적응을 하고 주말에는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 장소, 결혼 사진 촬용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샵 등 큼직한 것들을 제외하고도 자잘하게 선택해야될 것들이 너무 너무 많았다. 동시에 신혼 집도 알아보고 가전, 가구까지 어느정도 알아보고 나니 어느새 2024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계획형 인간으로

2024년에는 다시 계획형 인간이 되려고한다. 원래 MBTI로 말하면 꽤 J인 사람이었는데 1~2년 정도 전부터 너무 일에 치여서 하루 하루 내일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옮고 그름이 아니라 기호의 영역이겠지만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다보니 어느날 돌아봤을 때 생각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사에서 다른 동료들과 1:1 미팅을 하는 것을 권장하는데 마침 연말에 1:1을 했던 분이 나보다 훨씬 파워 J인 사람이라 여러가지 계획을 잘 세우고 실천하는 방법과 본인의 사례를 들려주셔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과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새해에는 다시 계획을 세우고 내가 진짜 원하는대로 살아보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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